개발일기

휴일 일기

초롱불 2022. 2. 10. 12:29

파이썬을 활용하던 프로젝트가 끝나고 긴 휴일이 주어졌다.

 

설날과 휴가, 이직과정에서 얻게 된 휴일이었다. 오랜만에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된 것만으로도 물론 기뻤지만 행복한 일들이 연달아서 찾아왔기에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우선 좋은 조건의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된 것이나 마음에 드는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서울에 올라온지 7개월이 되었지만 솔직히 여태까지의 생활은 한계까지 몰려서 버틸 수 있으니까 버틸뿐인 생활이었다. 기존에 생활하던 고시원은 정말 잠조차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의 극악의 환경이었다. 중앙냉난방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오래된 고시원이었는데, 건물자체도 오래되고 설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에 냉난방 둘 다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여름철에는 한 번 에어컨이 고장나더니 3-4일 정도 썩은내가 나는 집안 찜탕에서 지내야했다. 겨울철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했는데 방안이 따뜻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보일러를 높게 올리지 않았고 건물 외측에 있던 내 방은 우풍으로 그나마 있는 온기를 모두 빼앗겼다. 침대 위에서 잘 때는 패딩 등 외투를 껴입고서야 겨우 잘 수 있었고 영하 8도쯤 내려갔을 때에는 그나마도 힘들어서 침대 밑으로 내려와 바닥에서 잠을 자야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바닥에서 잠을 잔다는 것도 제대로 다리 뻗고 누울 공간이 나오지도 않았다. 다리를 조금 구부리고 책상 밑으로 다리를 넣고 침대 쪽으로 대각선으로 누워야 눕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수도 쪽에 어딘가가 동파가 되어서 온수가 나오지 않는 상황도 펼쳐졌다. 보일러가 동파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영하 8도에 찬물 샤워를 할 때에는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빨래도 옥상에 널면 얼 게 분명했기에 방 안에 널었는데 벽에 결로로 물방울이 맺히더니 곰팡이가 피어나기도 했다. 나 자신을 관리하고 깔끔하게 다니는 것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퀴퀴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바닥을 찍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생활이 끝난 것이다. 새로운 직장과 집에서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내게 주어졌다. 여기까지 온 것도 내가 노력해서 해낸 것이었다. 7개월간의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마무리 짓고 인정을 받았으며 추천과 함께 이직을 했고, 집도 내 발로 뛰며 집을 찾고 살면서 처음으로 9천만원대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은행 대출을 받으러 이런 저런 자료를 조사하고 서류를 정리하면서 일구어내었다. 뿌듯하고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희망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복의 이유였다. 설날인만큼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서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사촌들을 만났다. 다들 나이를 먹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모여 의지할 곳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 기쁜 일이었다. 명절직후 가까운 친구와 학교 선배의 결혼식이 있었고 친구를 축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친구는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서 그날의 주인공이 되었고 학교 선배는 신랑이 되어서 사랑과 행복으로 눈물이 고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학교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면서 반갑게 인사했고 뷔페에서 식사 후에 뒤풀이로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외에도 여유가 있을 때 연락 못하던 사람에게 연락해서 만나는 약속을 잡거나 입주하면서 필요한 가구를 주문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알찬 쉬는 시간이 이제 마무리 되어가는 걸 느끼고 있다. 어떤 철학책에서 삶을 축제를 준비하는 것에 비유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성대한 축제를 위해서는 무대를 세팅하고 축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가수나 연예인, 개그맨을 초청하고 그것을 위한 돈도 준비하고 함께할 사람들도 초대하는 등 여러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얻을 수 있는 축제의 시간은 며칠이다. 축제는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고 언젠가는 끝이 난다. 축제가 끝나면 무대를 정리하고, 지불해야할 잔금을 지불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로부터 멀어져서 혼자가 되기도 해야한다. 그리고 다음 축제를 준비해야한다. 나도 다음 축제를 준비해야한다. 다음 축제를 위해서는 이제 얻게 된 직장에서 잘 적응하고 내가 가진 능력을 잘 배양해야한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면 축제도 없고 행동할 수 있는 폭도 좁아진다. 아버지는 올해 환갑이고 어머니는 여전히 아프시다. 행복을 깊게 느끼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뛰쳐나가야 한다. 다음 축제를 위해서 다시 나를 불태워야 한다. 나는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