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4일 전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고향인 부산에서 장례를 치르고 발인을 마친 뒤 오늘 서울로 올라왔다.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기술적인 글 외에 글을 쓰기는 오랜만이다. 제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안 생긴다. 그럼에도 드는 생각을 하나씩 쌓아올려보고 싶다. 글의 주제는 시간, 서사, 삶으로 정했다. 너무 많은 걸 쓰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은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시간
아버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건 죽음이 나에게도 순번표를 쥐어놓았다는 걸 느끼게 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 다음은 나겠지. 아버지도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그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살기에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고 삶은 생각보다 짧다. 그렇기에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겨진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할아버지가 무엇을 남겼는지 느끼게 하기에는 빈 공간이었다. 할아버지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작은 할아버지, 고모 할머니, 당숙 어르신 정도 밖에 없었다. 빈소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모의 지인, 아버지의 지인, 손자 손녀의 지인들이었다. 할아버지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할아버지의 시간에 대한 말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는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89년 동안 살아오면서 남길 시간이 없을리가 없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공유할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남길 세상에 남지 못하였을 뿐일 것이다. 그래도 당숙 어르신과 작은 할아버지와 대화하며 몇가지 시간들을 들을 수 있었다. 충청도에 살 때에는 동네에서 힘이 세고 일을 잘하는 걸로 유명했고 술버릇이 나쁘기로 유명했다. 부산에 내려와서는 제분소에서 일했다. 제분소에서 일하며 모터 소리에 귀가 잘 안들리게 되었다. 정년까지 일하고 퇴임하였다. 정도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술버릇이 나쁜 것과 제분소에서 일하며 모터 소리에 귀가 안 들리게 된 건 나도 알던 사실이었다. 묵묵히 힘쓰는 일을 잘하던 건 처음 알게 된 일이지만 할아버지의 성격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걷지 못하게 되기 전까지인 80넘어서까지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모으던 게 할아버지였다. 표현이나 말이 많지는 않은 편이었고 충실하게 할 일을 찾는 성격이셨다. 평생이 묵묵함으로 채워져 있는 분이었다. 많은 걸 참는 분이었던 것 같다. 그 참는 걸 푸는 방법이 술이었지 싶다. 술을 통해서 참아오던 걸 풀고 토해내는 게 당신의 삶의 방식이었다. 대단한 인내심과 고집 뚝심. 그리고 억눌린 것에 대한 해소. 그것이 할아버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결혼 이후 충청도를 떠나던 때를 추억하셨다. 할아버지의 형제는 12남매였다. 집안은 양반 집안이었고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문장을 지어주는 선비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시집와서 그런 집안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해야했기에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먹일 입은 많고 눈 구경 할 일 없는 부산과 달리 충청도는 눈도 많이 오고 추워서 힘겨웠다며 참다 못해서 아들 그러니까 나의 큰 아버지를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때 할아버지는 그러면 자기도 내려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때 할아버지의 기분은 어땠을까? 사랑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충청도가 원래 마음에 안 들었던걸까? 둘째 아들이었던 할아버지는 그 길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 내려와서 처음에는 할머니의 외삼촌과 나무를 해다가 시장에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지게지는 법도 모르던 할아버지는 정말 처음부터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청춘이라는 건 상상하기에는 아득하다. 할아버지의 삶도 도전이 있었고 처음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쌓아올린 게 있었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고 자식을 위해서 일했다. 나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술 받아오게 하고 술로 속을 썩이는 사람으로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좋은 아버지였는지는 의문이 남긴하지만 그렇게 삶을 이끌어가던 분이셨다. 나에게는 할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남은 빈 시간이 너무나 많아서 알 수 없는 부분도 너무나 많다.
서사
삶은 짧고 시간은 정해져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삶을 채워야 할까? 이것이 내가 죽음의 순번표를 의식하고 떠올린 질문이었다. 나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의미 있는 서사로서 삶을 그려나가야 한다라고 답을 내렸다. 우선 삶은 원하는 대로 그림을 채워넣을 수가 없다. 백만 장자에 인기쟁이인 삶을 원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삶을 채워나갈 수는 없다. 누군가는 가난하고 누군가는 인기가 없다. 누군가는 운동 신경이 없고 누군가는 성적이 낮다. 극단적으로는 누군가는 일찍 죽을 수 밖에 없는 병에 걸려서 30년도 못 살고 세상을 떠난다. 그런 게 삶이다. 어떻게 삶을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인기있는 삶, 돈 많이 버는 삶과 같은 외부적인 기준으로 정해버리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수 없는 비극적인 기준이 된다. 그런 건 내가 원하는 삶을 채우는 기준이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삶을 채우는 방식이 정해질 수가 있어야 한다. 그런 걸 가능하게 하는 게 서사라고 생각한다. 삶은 시간 속에서 흐르고 원인과 결과가 얽히고 섥힌다. 원인과 결과와 시간은 서사를 자아낸다. 서사란 의미다. 사람은 사건 들의 연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우연일지라도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면 그걸 그 사람의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우연을 운명이라고 부르면서 그 사람의 삶의 고난을 극복할 역경으로 보게 되고 응원하게 된다. 가치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게 만들게 되길 바란다. 그걸 스스로도 믿고 이겨냈으면 하게 된다. 나는 그런 서사로서 자신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서 삶을 채워나갔으면 한다.
물론 이런 서사로서 스스로의 삶을 정의하고 채워나가는 게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삶은 다양하고 비극은 신이라는 게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한도 끝도 없다. 삶을 지속하기 보다는 끝내는 게 더 낫다 싶은 상황마저도 찾아온다. 군대에서 머리를 다치고 전역한 내 친구는 2년 뒤에 자살했다. 그 친구의 삶은 어떤 서사로 감싸려고 하면 비겁한 짓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희망을 가지라고 너의 역경을 이겨내며 너의 삶을 가치있는 서사로 채워나가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 하는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랬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이겨 낼 수 없는 상황마저도 이겨내는 마법같은 일들이 세상에 가득했으면 하게 된다. 가끔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이야기가 조금 다른 길로 새었다. 글을 고쳐가며 쓰면 좋겠지만 그렇게 정성들여 글을 쓰기에는 시간의 한계가 있는 게 아쉽다. 그래서 이야기가 삐뚤빼뚤하게 흘러가는 게 느껴지지만 자연스럽길 바라면서 계속해서 쓴다. 결론적으로 삶을 서사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내가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다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삶을 서사적 맥락에서 가장 가치있는 이야기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삶
나의 삶도 여러 이야기가 엮여서 지금까지 왔다. 나는 지금 32세이다. 할아버지는 89세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는 대략 3분의 1의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적은 삶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부터 과거는 점점 더 나를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도록 옭아맬 것이다. 쌓인 과거는 미래에 대한 원인이 되어서 그 무게로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짓누를 수 밖에 없다. 학력이나 어학 능력과 같은 것들의 부족함을 느끼고 전공이나 IT 기술의 방향성, 내가 배워오고 선택한 것들이 맞는지 틀린지에 따라 많은 게 바뀌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하나 뿐이고 최선을 다해서 내 이야기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 뿐이라고 믿는다. 요즘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해나가고 있다. 언젠가 수확의 때가 올 것이고 그때를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를 써내려간다. 먼 훗날 이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 이 이야기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